'보르헤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4/26 축복의 시
  2. 2009/10/20 시학 - 보르헤스
  3. 2009/09/04 문학적 체질,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중 (2)
2010/04/26 15:47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어느 누구도 탄식이나 비난쯤으로 폄하하지 않기를,
기막힌 아이러니로 내게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신의 오모함에 대한 나의 소회를.


신은 빛을 잃은 이 눈을,
꿈들의 도서관에서 여명이 그 열정에 굴복해
건네는 분별없는 구절들밖에 읽을 수 없는 이 눈을
책의 도시의 주인으로 만드셨네.


낮은 헛되이 무한한 책들을
두 눈 가득 선사하네.
알렉산드리아에서 스러져간
필사본들처럼 읽기 힘든 책들을.


(그리스 신화에서) 한 왕이
샘과 정원 사이에서 갈증과 배고픔으로 죽었지.
나는 이 높고 깊은 눈먼 도서관의
구석구석을 정처 없이 떠도네.


벽들은 백과사전, 지도, 동양과
서양, 세기, 왕조,
상징, 우주와 우주기원론을
건네지만 모두 부질없다네.


도서관을 낙원으로 꿈꾸던 나는
그림자에 싸여 천천히,
지팡이를 더듬거리며,
텅 빈 어스름을 탐사하네.


우연이라는 말로는 정확하게 명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이것들을 주재하네.
다른 누군가가 안개 자욱한 어느 오후에
이미 많은 책과 어둠을 건네받았네.


느릿한 복도를 배회할 때
나는 늘 성스러운 막연한 두려움으로
똑같은 날들에 똑같은 걸음을
옮겼을 이미 죽고 없는 타자임을 느끼네.


여럿인 나와 유일한 하나의 그림자,
둘 중에서 누가 이 시를 쓰는 것일까?
어차피 저주의 말이 쪼개질 수 없는 하나라면
내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무슨 상관이랴?


내가 그루삭이든 보르헤스이든,
나는 이 소중한 세상이
일그러져 꿈과 망각을 닮은 창백하고
막연한 재로 사위어가는 것을 바라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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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흥:)
2009/10/20 22:03
시간과 물결의 강을 주시하며
시간이 또다른 강임을 상기하는 것,
우리들도 강처럼 스러지리라는 것과
얼굴들이 물결처럼 스쳐감을 깨닫는 것.

불면은 꿈꾸지 않기를 꿈꾸는
또다른 꿈임을,
우리네 육신이 저어하는 죽음은
꿈이라 칭하는 매일 밤의 죽음임을 체득하는 것.

중생의 나날과 세월의 표상을
모년 혹은 모일에서 통찰해 내는 것,
세월의 전횡을
음악, 속삭임, 상징으로 바꾸는 것.

죽음에서 꿈을 보는 것,
낙조에서 서글픈 황금을 보는 것.

가련한 불멸의 시는 그러한 것.
시는 회귀하나니, 여명과 일몰처럼.

이따금 오후에 한 얼굴이
거울 깊숙이서 우리를 응시하네.
예술은 우리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하네.

경이에 지친 율리시즈는
멀리 겸허한 초록의 이타게가 보였을 때
애정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
예술은 경이가 아니라 초록의 영원인 그 이타케.

예술은 또한, 나고 드는
끊임없는 강물과도 같은 것.
끊임없는 강물처럼, 본인이자 타인인
유전하는 헤라클레이토스 자신의 거울과도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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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흥:)
2009/09/04 14:13


소설을 읽다보면 흥분시키는 책, 흥분시키는 작가가 있게 마련이다. 그 경우, 그런 작가, 그런 작품에 자신의 문학적 체질이 반응하고 있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작가의 작품을 섭렵함으로써 자신의 문학적 체질을 강화시켜나갈 일이다. 자신의 체질을 강화시켜줄 수 있는 작가를 만나는 것이 소설 습작에서 매우 중요한 단계이다. 그 소설, 그 작가야말로 참된 문학적 스승이다. 아니 그이상의 스승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스승을 만난 다음에 할 일은 그 스승에게 배우는 것뿐이다. 그 스승이 참된 스승이라면, 일단 한 스승에게 배우는 것이 좋다. 반복적으로 읽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오진이 아니어야 한다. 만일 오진했다면, 엉뚱하게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한단의 걸음걸이를 배우고 있는 셈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 훈수, 바둑 격언 가운데 이런게 있다. 정석을 익혀라. 그리고 잊어버려라. 바둑에서 정석이란 공격과 수비에 최선이라고 알려진 돌을 놓는 법을 일컫는 말이다. 바둑을 배우는 것은 정석을 익히는 과정이다. 정석을 익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정석에 얽매여서는 자기 바둑 세계를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 이 격언 속에 들어 있다. 소설 공부도 마찬가지다. 정석을 익혀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 갇혀서는 안 된다. 소설 문법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그 문법의 틀에 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자기 세계를 펼쳐야 한다. 스승에게 배워야한다. 그러나 스승의 둥지를 벗어나 자기 날개로 날아야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이 내용도 잊어버려야 한다. 소설을 써야 한다.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승우-

보르헤스를 처음 만났던 순간이 떠올랐어. 어느 일요일 오후 도서관에서 그의 책 중 하나를 잡았지.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였어. 한시간 삼십분만에 책을 읽고 너무 좋아서 그 책을 사버렸지. 보르헤스 전집, 그가 추천한 책들을 사들이기 시작했어. 사실 아직 그가 추천한 책들을 사다놓고 다 읽은 것은 아니야, 왠지 손이 덜 가는 것도 있더라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보르헤스의 글은 내 가슴을 뛰게 했어. 내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들을 기억 속에서 꺼내어주었지. 그리고 나는 정말 그를 스승님이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다는 거야.
나의 문학적 체질은 보르헤스 스승님 ㅋㅋ

마치 내 얘기를 적어 놓은 것 같아서 포스팅. 오늘도 즐거워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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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흥:)